



대방광불화엄경소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이 책은 당나라의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화엄경』주본 80권에 대하여 송나라의 정원(淨源)이 해설을 단 것으로, 전체 120권 가운데 권21, 30이다. 표지는 갈색 종이로 되어있으며, 가운데 금색으로 제목이 쓰여 있다. 현재까지 권21, 24, 28, 29, 30, 41, 42, 68, 84, 97, 100, 101, 102, 117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 선종 4년(1087) 송나라에서 보내온 목판을 닥종이에 찍은 것으로, 권21과 권24는 각각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며, 크기는 세로 32.4㎝, 가로 10.6㎝이다. 그후 이 목판은 조선 세종 5년(1423) 해인사의 대장경판을 달라고 요구하는 일본에 그 다음해(1424년)에 전해졌다.
송나라에서 고려, 그리고 다시 일본으로 전해지는 동양 3국의 문화교류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 교류의 증거물로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국가문화유산 종합정보서비스 내용)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은 줄여서 '약사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질병의 치유를 기원하기 위한 경전이다. 이 약사경은 속장경을 간행하기 위해 1086년 흥왕사에 설치한 교장도감(敎藏都監)에서 펴낸 것 가운데 하나이다.
닥종이에 찍어낸 1권으로 크기는 세로 30㎝, 가로 16㎝이며, 제목 아래 대장경의 천자함(千字函:천자문의 순서에 따라 책의 번호를 매기는 방법) 표시인 '국(鞠)'자가 적혀 있다. 대각국사 의천이 속장경을 간행하던 중 숙종 6년(1101)에 돌연 병이 생겨 그해 10월에 입적하게 되는데, 그의 병이 치유되길 기원하기 위해 대장경판에 근거하여 간행에 착수하였고 숙종 7년(1102)에 완성하였다.
이 책은 새김의 솜씨·글자획·종이질 등이 고려시대의 목판을 보고 다시 새겨, 조선시대에 찍어낸 여러 판본들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조선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