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동(栗洞)의 명칭은 마을에 밤나무가 많았고, 한 그루에서 서 근(斤)이나 되는 밤이 생산돼 ‘삼근율(三斤栗)’이라 하며 이 지역을 서근배미, 서근바미 또는 취율리(取栗里)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돌마면 율리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도 그대로 유지됐다. 1973년 성남시 율동이 됐으며, 1992년 5월 동 전체가 분당동에서 분리된 서현동의 관할이 돼 오늘에 이른다.

율동공원은 자연과 역사, 그리고 문화 예술의 명승지다. 1960년대에 조성된 분당저수지를 중심으로, 30만8천648㎡의 면적에 공원을 조성, 1999년 8월 30일 개원했다. 자연원형을 최대한 보존해 철새들의 편안한 쉼터가 되고, 호수 주변의 갈대밭은 아름다운 자연의 운치를 한결 더 느끼게 한다. 국내 최대 높이(45m)를 자랑하는 번지점프대는 율동호수를 바라보며 곧장 뛰어내리도록 돼 있어 점프 장면을 관람하기 위해 찾는 관광객도 적지 않다. 그리고 분수대의 물줄기는 최고 103m까지 솟는 것이 장관이며, 호수를 한 바퀴 도는 2.5㎞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 유서 깊은 역사의 숨결

이처럼 쾌적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율동공원에는 유서 깊은 역사의 숨결이 흐르고 있다. 문정공 한계희의 묘소를 비롯해 400년 넘게 이 고장을 지켜온 청주 한씨 문중의 산 역사가 숨쉬고 있고, 일제시대에는 성남지역 독립운동의 발상지가 된 곳이기도 하다.

율동 산 2-1번지의 태봉(胎峰)은 조선 성종의 어태(御胎)를 안치했다고 구전되는 곳으로, 문정공 한계희(韓繼禧)와 공간공 한사문(韓斯文) 묘역 중간에 불룩하게 솟아오른 나지막한 구릉이다. 이 태봉은 청주 한씨 족보의 <분산도(墳山圖)>에 뚜렷이 표시돼 있는데, 이 일대가 청주 한씨의 사패지로 하사되면서 성종의 어태는 경기도 광주시 태전동의 태봉산으로 옮겨가게 됐고, 다시 일제강점기에 고양시 원당동의 서삼릉(西三陵)으로 이전됐다. 또한 1999년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에서 발간한 <조선의 태실>에는 ‘정상의 태실 자리가 푹 파여 있어 도굴됐음을 알 수 있으며, 지표에 태비도 없고 관련 전설도 전하지 않아 이곳이 누구의 태실인 지 알 수 없고, 다만 태봉의 형국에서 볼 때 조선 왕실의 태실로 추정된다’고 했다.

율동에는 청주 한씨 외에 순흥 안씨, 진주 유씨, 의령 남씨 등의 선조와 그 후손들의 묘역이 다수 안장돼 있다. 의령 남씨 묘역은 새마을연수원과 국궁장(분당정) 인근의 낮은 구릉에 안장돼 있다. 이 중 대표적 인물의 묘역으로 조선 후기의 문장가, 정치가로 영의정이 돼 봉조하(奉朝賀)가 됐던 남공철의 아버지인 남유용(南有容)의 묘소가 있다. 남유용은 1747년(영조23) <군덕10조(君德十條)>를 진언해 군주의 성실을 강조했다. 1754년 원손보양관(元孫輔養官)이 돼 세손인 정조를 무릎에 앉혀놓고 글을 가르쳤고, 1757년에는 원손사부(元孫師傅)가 돼 호랑이 가죽을 하사받았다. 1767년 봉조하가 돼 기로소에 들어갔다. 봉조하란 평생동안 실무를 보지 않으면서도 신분에 맞는 녹봉(祿俸)을 받으면서 다만 국가의 의식이 있을 때에만 조복(朝服)을 입고 참여하는 명예직이다. 인물됨이 실박하면서도 바른말을 잘하고 청백했으며,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다.

청주 한씨 묘역은 세조 때, 한계희의 묘소 일대를 사패지로 받고 그 후로 한사개(韓士介), 한석(韓碩) 등이 세거하면서 대대로 한씨 집성촌이 이루어져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문정공 한계희의 묘와 신도비는 1994년 4월 20일 경기도문화재자료 제84호로 지정됐고, 산 6-2번지의 청연공파 묘역은 2009년 성남문화원의 청원으로 성남시 향토유적 제9호로 지정됐다. 성남 율동의 청주 한씨는 조선의 국호 선정을 비롯한 나라의 기틀을 안정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했으며, 근대사에 있어서도 독립운동가를 배출하는 등 성남지역에서 5세기 이상을 세거하면서 큰 업적을 나타낸 문중이다. 청련공 한지원(韓智源)은 중국 송나라의 소동파 3부자에 비견되는 문장가로, 청연공의 아들인 술(述)은 임진왜란 초기 명나라 제독을 접견하는 등의 외교관으로, 회(懷)는 효성이 지극했으며 역시, 외교관으로 활동하는 등의 업적을 보였다.
율동 순흥 안씨 묘역의 대표적 인물로는 안호, 안침 형제를 꼽을 수 있다. 안호(安瑚)는 고려 말의 성리학자인 안향(安珦)의 후손으로, 공조판서를 지낸 안침의 형이다. 사관(史官)으로 양성지 등과 함께 여러 문적 가운데 표시된 중요지명을 뽑아 <북정록(北征錄)>을 편찬했다. 안침(安琛)은 한때 임사홍의 간사함을 폭로해 임금의 노여움을 사서 파직됐다가 임사홍이 물러난 뒤에 다시 등용됐다.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했고, 1514년(중종 9) 특별히 공조판서에 발탁됐다가 바로 병사했다. 문장에 능하고, 필법은 송설체로서 해서에 뛰어났는데, 하남에 있는 세종대왕의 왕자인 밀성군침비(密城君琛碑), 율동공원의 좌찬성한계희비(左贊成韓繼禧碑)와 시흥의 월성군이철견비(月城君李鐵堅碑)가 있다.

  # 들불처럼 일어난 대한독립만세 지역 운동

율동 성교촌(聖敎村)은 신교촌(信敎村)이라고도 하는데, 천주교 박해 때 신도들이 피신해 은거하면서 옹기를 구워가면서 생활하였던 터라고 전해지고 있다. 국궁장(國弓場)에서 큰 능안골의 포장도로 끝나는 곳의 나지막한 구릉 말단 지점 서북향에 위치한다. 앞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현재 밭으로 개간돼 있다.

1919년 3월 성남지역에서도 낙생면에서는 면장 출신인 남태희가 주도하고, 돌마면 율리에서는 한백봉의 주도하에 ‘대한독립만세’ 운동이 3월 27일을 기해 동시에 전개됐다. 이때 성남의 숯골(탄리), 남한산성, 광주 및 하남지역에서도 같은 날 동시다발적으로 만세시위가 벌어져 일제 헌병을 당황케 했다. 한백봉은 돌마면 내 12개리와 오포면 일부 및 낙생면 일부를 잠행하면서 활동, 3월 26일 오후부터 동민 100여 명을 동원, 봉화를 올리고, 3월 27일 돌마면 분당리 장날 장터에 3천 명이 집결해 태극기를 앞세우고 조선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또한 1927년부터 경기도 광주군에는 뜻있는 애국지사들이 신간회 광주군지회를 결성했는데 여기에 한백봉과 한순회 등이 참여해 조선민족의 정치적, 경제적 각성을 촉진하고 기회주의를 배격하고 단결을 공고히 해 항일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데 앞장섰다. 한순회(韓順會) 역시 청주 한씨 인물로서 1927년 신간회 광주지회장으로 활동했으며, 1933년 이후에는 천도교 경성교구장으로 있으면서 독립운동을 지원할 목적으로 교도들에게 특별희사금을 모금하다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93년 대통령 표창이 수여됐다.

 # 책테마파크, 전통국궁장 등 즐비

이처럼 율동공원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천혜의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명승지이다. 현재 이곳 율동공원 주변으로는 특징적인 몇 가지를 더 손꼽아 볼 수 있는데 책테마파크, 국군의무사령부, 새마을연수원, 전통 국궁 활터인 분당정 등이 그것이다.

책 테마파크는 국내 최초로 책을 테마로 만든 공원이다. 기존의 책을 읽는 도서관의 개념에서 벗어나 상상력과 독서의욕을 고취시키는 창조적인 공간이며 공연, 전시, 체험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국군의무사령부는 1954년 3월 마산에서 창설된 육군의무기지 사령부가 1971년에 국군의무사령부로 개칭한 것이다. 성남시 율동으로 오게 된 것은 1999년 12월. 국군장병과 전투경찰, 6·25 참전용사, 창군용사, 주한 외국무관 및 가족, 귀순자 등의 질병치료와 군진의학(軍陣醫學)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은 1972년 경기도 고양 농협대학 내에 독농가연수원으로 설립됐다 1983년 4월 26일 현재의 율동공원으로 이전하고 그 해 12월 31일 새마을운동중앙본부로 통합됐다. 이어 1990년에 지금의 명칭으로 고치고, 1993년에 부설 보육교사교육원과 연수원어린이집을 개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서 현재 성남영어마을이 운영되고 있다.

율동공원에는 전통 국궁장이 있는데 1999년 8월 15일에 율동정이라 이름해 문을 열었고, 지금은 분당정으로 이름을 고쳤다. 율동공원에는 오래전부터 활터거리라는 지명이 있어왔는데, 청주 한씨 묘역 내에 유택이 있는 한명욱과 관련 있는 곳이다. 한명욱은 <선조실록> 편찬에 참여했고, 1646년(인조24) 자헌대부에 올라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가 돼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는데, 훗날 이곳 율동에 머물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활쏘기를 즐겨했기에 활터거리라 불렀다고 한다. 옛말에 “손에도 이끼가 끼고 뼈에도 녹이 스는 법”이라 해 무예수련을 독려하는 대표적인 말이지만 전통 국궁은 인격수련을 겸한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 다음 주 “큰 역사의 숨소리가 있는 남한산성” 18편에서는 ‘성남 천림산 봉수의 역사’에 대해 소개됩니다.>